의료계약을 체결하는 목적과 유형
치료 커뮤니케이션은 의료의 본질이지만 동시에 의료계약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1강에서 함께 살펴보았듯이 치료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또는 그런 이상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의료인은 환자의 물리적 통증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총체적 고통을 돌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전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노력은 어떻게 전개될 수 있을까요? 의료인이 환자의 몸과 삶에 대한 이해의 동반자라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몸을 권력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상황에 대한 감정이입을 통해서 환자의 경험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환원주의적인 사고에 기초한 근대의학이 탄생하기 이전에 의료인은 환자에게 '어디가 아픕니까?'라고 묻지 않고요. '당신의 문제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의료에서 중요한 건 환자의 경험을 함께 공감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것이라는 점을 말해주는 것이죠. 사회보장적인 보건의료행정체계가 작동하고 또 의료기관이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명령 아래에 있는 한, 즉 의료체계의 원리가 작동하는 한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전인적 돌봄이라고 하는 것이 의료계약에 기초한 의료인의 법적인 책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은 의료인의 직업윤리는 되어야 하겠죠.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의료체계가 끊임없이 성찰을 하도록 유도하는 기준이 되어서 공공의료보험 급여를 비롯한 전체 의료 서비스의 수준을 향상시키는 동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새로운 의료문제와 법정책의 필요성
최근에는 의과학과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야기되는 굉장히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의료계약의 본래 목적 그리고 의료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이렇게 새롭게 등장하는 문제들에 대한 법 정책을 수립할 때 아주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예를 들어서 유전자검사, 연명의료결정 등의 새로운 문제를 우리가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의료인과 환자가 그 해당되는 문제 상황을 굉장히 다각적으로 성찰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를 법에 규정함으로써 치료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의료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아주 절실한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료계약의 법적 유형
우리 민법은 14개의 중요한 계약 유형에 대해서 규정을 하고 있습니다. 14개의 유형들을 전형계약이라고 말을 하는데요. 이 전형계약 중에 의료계약과 유사한 것으로는 우선 도급계약과 위임계약을 한번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도급이란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계약입니다. 그리고 위임계약이란 타인에게 사무처리를 위탁하는 계약을 말하는데요. 의료계약에서 의사에게 주어진 의무인 치료는 도급계약에서 말하는 일의 완성이라기보다는 환자가 의사에게 부탁한 사무처리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의사가 최선을 다해 진료한다고 하더라도 항상 환자의 건강상태가 완전히 회복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우리가 일의 완성이 목적이라고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겠죠. 의료인이 치료 목적을 최선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환자와 다양한 소통을 하고 이것을 기초로 성실하게 의료행위를 했다면, 설령 질병의 완치라는 결과에는 이르지 못했더라도 의료계약을 이행하지 못했다는 그런 채무불이행 책임을 부담하지는 않는다고 보아야 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환자도 의료인에게 자신의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의료인의 조언을 귀담아 들으면서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되겠죠. 다만 의료계약을 위임계약이라고 보더라도 의료가 위임계약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사무 개념에 포섭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민법 제686조 1항은 위임계약에서 위임을 받은 사람은 위임을 한 사람에 대해서 보수를 청구하지 못하는 무상원칙을 규정하고 있고요. 또 민법 687조는 위임사무를 처리하기 위해서 필요한 비용을 미리 지급해 달라는 비용선급권을 규정하고 있고 또 민법 698조 1항은 위임계약을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는 상호해지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규정은 여러분이 보시더라도 의료계약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죠. 따라서 의료계약을 민법이 규정하는 전형계약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비전형계약으로 본다거나 또는 독일과 네덜란드 민법에서처럼 새로운 형태의 전형계약으로 규율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민법은 치료계약이라고 하는 것을 전형계약의 한 유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독일 민법 제630조의 a 제1항은 치료계약이란 환자에게 의료행위를 하기로 약정한 자는 약속된 행위를 할 의무를 부담하고, 환자는 제삼자가 비용을 부담할 의무가 있지 않는 한 합의한 비용을 지불해야 할 의무를 부담하게 하는 계약이 바로 진료계약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의에 기초해서 의료인과 환자의 상호 협력 의무와 의료인의 정보 제공 의무, 환자의 동의, 의료인의 설명 의무, 진료기록부 작성과 보관 의무, 환자의 기록 열람권, 증명 책임 등 의료계약에 고유한 권리의무 계약을 규율합니다. 특히 독일 민법 제630조의 b는 의료계약에서 특별히 규정한 바가 없는 사항에 대해서는 근로관계를 제외한 고용관계에 관한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데요. 우리가 이러한 비교법적인 내용들을 모두 있는 것을 우리의 현실에 다 적용하거나 받아들여야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의료계약에 관한 다양한 사안을 해석하고 또 앞으로의 법 정책을 수립하는 데에 참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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