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와 정치체계 사이 체계의 논리
우선 시민사회와 정치체계 사이에는 어떠한 체계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을까요? 우리나라의 현행 의료체계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여러분께서 잘 아시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의료체계는 사회보장적인 의료체계를 표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보장적인 의료체계를 확립하기 위해서 국가는 어떻게 하고 있죠? 국가는 국민건강보험이라는 공보험을 일종의 강제보험의 형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보험제도에 기초해서 우리는 국가에게 보험료를 지급하고 있죠. 예를 들어 직장에 취업을 하게 되면 건강보험료가 원천징수 되는 것은 다 아시죠? 그리고 더 나아가서 국가는 시민들로부터 세금을 징수해서 의료와 관련된 서비스의 기금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쨌든 국가에게 보험료도 내고 세금도 내고 있기 때문에 국가가 의료에 관련된 다양한 서비스를 가급적 많이 제공해주기를 기대하게 되죠. 그리고 그래야만 우리는 말하자면 지금의 행정부를 지지하고 그들이 다시 집권하는 것에 저항하지 않겠죠. 특히 정치체계의 가장 중요한 작동 원리는 권력을 지속적으로 창출해내는 것 또는 재생산해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시민한테 어떻게 보여야 시민의 지지를 계속 받을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국가는 실제의 재정 현실을 무시하고 보험료를 조금만 내더라도 아주 높은 의료 서비스를 보장해준다는 약속을 하게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보험료가 낮아지면 어떠한 현상이 나타날까요? 보험료가 낮으면 보험수가가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보험수가라는 것은 아주 쉽게 말하면, 의료인이 보험 서비스에 해당하는 의료행위를 했을 때에 그것을 금전적인 대가로 환산한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보험수가가 낮아지다 보면 의료공급기구의 입장에서는 어떠한 생각을 하게 될까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민간의료시장이 허용되어 있지 않고 모든 의료공급기구들은 공보험 서비스의 체계 내로 편입이 되어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의료공급기구는 보험수가가 낮아서 수익성이 낮게 된다고 생각을 하게 되겠죠.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 의료공급기구들은 어떻게 하게 될까요? 이들은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겠죠. 예를 들어서 수가가 낮은 치료는, 진료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거나 아니면 불필요한 검사를 자꾸 하라고 권한다거나 아니면 과잉진료를 하면서 점점 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행위들을 필요와는 상관없이 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공격적인 경영을 하게 될 수가 있어요. 그리고 그러한 공격적인 경영의 피해자는 결국 시민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보험료의 인상을 너무 지나치게 제한하게 되다 보면, 실제로 시민들이 부담하게 되는 의료비의 본인부담금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 본인부담금의 비중이 높아지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의료기관에 가서 서비스를 받을 때 그 서비스가 건강보험의 목록 안에 들어 있더라도 건강보험에서 지원해주는 금액 이외에 추가로 지급하게 되는 비용이 있잖아요. 그게 바로 본인부담금입니다. 그 본인부담금이 높다면 사실 보험료가 낮더라도 사회보장이 잘 이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겠죠. 더 나아가서 보험료가 너무 낮다면 실제로 우리가 암과 같은 재난성 질환의 경우에는 건강보험으로 커버되지 않게 됩니다. 특히 저소득층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보험을 통해서 위험이 분산이 돼서 내가 큰 병에 걸렸더라도 국가 지원을 통해서 진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요. 그렇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될 수 있는 것이죠.
의료공급체계와 정치체계 사이 체계의 논리
이제 다른 한편 정치체계와 의료공급체계 사이에는 체계의 논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겠습니다. 의료공급체계는 의료인이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두 가지 모습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의료인은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전에 보았듯이 환자와의 치료 커뮤니케이션의 주체예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의료인은 의료기관을 경영하는 경영인이죠. 이 경영인으로서의 의료인이 바로 의료공급체계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정치체계는 사회보장적 의료를 실현하기 위해서 의료인이 의료행위를 하는 방식을 정책적으로 통제를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통제하고 있는지 한번 볼까요? 우선 사회보장적 의료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대표적인 정책은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입니다. 이 요양기관이라는 말이 다소 낯선 분들도 있을 텐데요. 요양기관이라고 하는 것은 국민건강보험법상의 건강보험 서비스, 즉 이른바 요양급여를 제공하는 의료기관 등을 의미합니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모든 의료기관은 자신의 의사에 상관없이 당연히 요양기관이 됩니다. 이로 인해서 의료기관은 설령 '나는 보험의료체계에 편입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라고 할지라도 그럴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민건강보험법에서는 요양급여를 하는 방법, 절차, 범위, 상한 등의 기준을 국가가 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양급여가 아닌 비급여의 경우에도 우리가 어떤 서비스를 비급여로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의료기관이 정해져 있는 비급여가 아닌 임의의 비급여를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금지되어 있는 것이죠. 이것을 통해서 의료행위의 방식이 관료적으로 규격화되고 통제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의료의 방식이 행정 관료에 의해 권력적으로 정해지게 된다는 것은 의료행위의 수준이 국가의 의료보험재정에 비추어서 사회보장적 의료체계의 틀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결정된다는 점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규격진료의 수준은 재정의 한계로 인해서 안타깝지만 높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진료의 규격화는 다른 한편으로는 의료인이 실제 임상에서 그때그때 가장 적절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어쩔 수 없이 제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의료공급체계와 시민사회 사이 체계의 논리
의료공급체계와 시민사회의 사이에는 체계의 논리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을까요? 의료공급체계는 무엇보다 의료기관을 잘 경영하기 위해서, 즉 일정한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진료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에 기초해서 진료비용 대 진료수입의 경제성을 보장하는 수준의 진료를 하게 되죠. 특히 바로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국가가 표방하는 사회보장적 의료정책 하에서 의료시장은 사회화되어 있기 때문에 의료공급체계는 굉장히 공격적인 경영을 하게 되는데요. 이로 인해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커뮤니케이션의 두 주체라기보다는 일종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로 변화됩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의료관계는 의사와 환자가 소통을 하면서 자율적으로 규범을 형성하는 관계의 차원만이 아니라, 국가가 표준적으로 정해주는 공적인 표준에 기초한 관계의 차원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두 차원의 관계는 여러 가지 점에서 서로 모순이 되고 갈등을 일으키게 되면서 의료사회는 일종의 아노미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의료인과 환자 모두 치료적인 대화를 수행하는 주체의 지위에서 이탈해서 소외되기 때문이죠. 의료인과 시민 모두 치료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요구되는 각자의 본래 역할과 행위를 수행할 동기를 잃어버리게 되고, 의료교육도 방향성을 상실하게 되는 위기가 등장하게 됩니다. 특히 개별 의료행위의 가치라는 것이 금전으로 환원되는 상황에서 커뮤니케이션은 대부분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독자적인 가치가 책정되지 않는 그냥 기술에 수반한 부수적인 행위가 되기 쉽습니다. 대형화된 병원을 한번 생각해보시면, 환자는 이름을 불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대기번호표에 적힌 숫자로 불리기도 하고요. 또 의료기관의 적정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서 대기하는 다른 환자들의 틈 속에서 굉장히 익명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온전한 치유를 가능하게 하는 대화에 성공해야 한다는 건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너무나 어려운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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