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한 의료계의 현실
왜 우리의 의료 현실은 이 치료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이상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또는 이전보다도 왜 더 멀어지고 있는 걸까요? 치료 커뮤니케이션의 소외 현상이 어떻게 그리고 왜 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이 현상의 원인을 먼저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의료의 과학화, 전문화 그리고 이와 더불어 등장한 의료체계의 성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먼저 의료의 과학화와 전문화 현상에 대해 함께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의료의 과학화와 전문화
서구의 역사를 중심으로 보면 중세 이후의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됐고, 사람들은 신과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사고에서 벗어나면서 교회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 시대를 열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새로운 시대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사회가 시작되죠. 이 근대사회에서는 인간사회가 인간의 이성을 기초로 끊임없이 진보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해서 다양한 사상과 학문이 발전하게 되는데요. 특히 과학 분야에서도 이른바 과학혁명이라고 불릴 정도의 엄청난 발전이 있게 됩니다. 이러한 과학의 발전은 의료 분야에도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데요. 특히 19세기에는 인체를 진단하는 다양한 기기들이 발명됩니다. 어떤 기기들이 발명되었는지 한번 볼까요? 1816년에는 청진기가 발명됐습니다. 1851년에는 검안경이, 1855년에는 후두경이, 1867년에는 위장관, 1887년에는 맥압계 그리고 1895년에 발명된 X선 장치가 19세기에 발명된 대표적인 의료기기들입니다. 이 기기들을 보시면 여러분께서는 이른바 근대의학이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의학의 모습이고, 근대의학의 시작은 그전에 의학의 모습과는 다른 패러다임으로 의학이 변화되는 계기라는 점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기기들이 발명됐다는 건 근대 이후의 의료 역시 과학화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소개해드린 것과 같은 의료기기들은 특히 환자의 증상을 과학이론에 기초해서 정확하게 진단하기 위한 기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구들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의료는 환자의 신체적인 증상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데 집중을 하고, 그 진단 결과가 갖는 의미를 과학적 이론에 기초해서 해석해내고, 또 그러한 해석 결과에 따른 적절한 치료법을 찾는 행위가 됩니다. 즉, 의료가 과학화되면서 의료인의 관점에는 아주 큰 변화가 있게 됩니다. 이 변화를 달리 말하면 의사에게서 다른 무엇보다도 환자의 증상에 대한 생화학적인 이해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전근대 의료에서는 질병을 단지 신체의 특정 부위에서 일어나는 어떤 국소적인 증상이 아니라, 몸의 전체적인 불균형이라고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근대 의료는 질병을 하나의 외부적인 원인이라고 보고 해부학에 기초해서 질병이 자리 잡은 몸의 특정 부위를 추적하면서 이것을 제거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이제 질병은 점점 어떤 세포 단위의 병리적인 현상으로 이해가 되는데요. 다양한 기구들이 점점 더 발명될수록 이러한 이해는 점점 더 심화되었죠. 이와 같이 의료가 과학화되면 의료에서 이제 환자는 어떤 존재가 될까요?
의료의 과학화와 환자의 존재감
과학화된 의료에서 환자의 몸은 질병을 안고 있는 하나의 관찰 대상 또는 실험적인 조작의 대상이 됩니다. 특히 기구를 사용하게 되면서 기구의 사용은 환자와 의사 간의 언어적인 소통을 대체하게 됐습니다. 많은 경우에 환자는 의료의 과정에서 의사를 마주하게 된다기보다 차가운 의료 장비들을 마주하게 된다는 느낌을 받게 된 거죠. 여러분도 특히 대형 병원에서 다양한 검사를 받아보셨다면 이런 경험과 느낌들을 가져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 경우에 따라서 의사는 기구 사용을 빌미로 환자의 삶의 문제를 다각적으로 살펴보는 번거로움을 어쩌면 회피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환자와 다양한 방식으로 교감을 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더라도 기구를 사용함으로써 의료 행위를 충분히 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또는 어쩌면 이런 커뮤니케이션의 시간 자체가 기구 사용으로 인해서 부족하게 되었다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의료의 과학화는 그 자체로는 잘못된 것도 아니고요. 또 피해야 할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근대 이전의 의료에서 굉장히 다양하다고 생각했던 환자와 의사 간의 정서적인 교류가 의료가 과학화되면서 굉장히 큰 폭으로 축소되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의료의 전문화
의료가 고도로 과학화되면서 의료는 더 나아가서 다양한 전문 분과로 세분화되는데요. 이것을 달리 말하면 의료의 전문화가 이루어졌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서 의료는 이전보다 훨씬 더 복잡한 체계에서 수행이 되죠.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서로 다른 분과들이 팀을 이루어 협력을 하면서 의료를 수행하는 거대한 종합병원이 드디어 탄생하게 됩니다. David Rothman이라는 학자는 의료적 결정을 둘러싼 법과 윤리의 역사에 관한 책을 저술했는데, 이 책의 제목을 〈Strangers at Bedside(침대 옆의 이방인들)〉이라고 붙였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제목인데요. 의료의 과정에서 환자는 자신이 알고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얼굴들을 대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방인들로서의 전문가 팀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이렇게 의료가 점점 세부적인 분과들로 전문화되고 이런 각 전문가들이 한 명의 환자를 함께 대하지만, 한 명의 환자에 대한 각각 의사들의 친밀도는 예전보다 훨씬 낮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점은 이 전문가들 간에 늘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수 있다 보니까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에서 굉장히 복잡한, 우리가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그런 문제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결국 의료의 과학화와 전문화로 인해서 의료에서 치료 커뮤니케이션은 점점 과학화된 의료기기와 전문화된 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의료의 과학화와 전문화로 인해서 어떻게 치료 커뮤니케이션이 소외되었는지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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